세계사 / / 2022. 4. 2. 17:28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 남북전쟁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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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이 당선되었을 때 왜 전쟁이 일어났을까요?

첫 번째, 지역주의이다.

남부의 주에서는 노예를 기반한 대규모 농장 시스템과 가난한 백인들의

자급자족 농업시스템이 경제의 주를 이루고 있던 반면 북부에서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실행되고 있었고, 큰 도시들이 경제를 이끌고 있었다.

미국의 건국 때부터 점점 고착된 관습과 환경은 북부와 남부를 다른 세계로 

만들어 버렸다.

두번째, 주정부의 권한에 대한 문제이다.

남부 주들은 특히 각 주의 권한이 연방정부의 법으로 침해되는 것에 격렬한

반대를 해왔고 연방에서 탈퇴하는 권리도 주 정부의 권한이라고 여겼다.

세 번째, 노예제도이다.

미국이 서부로 팽창을 할 때마다 떠오는 이슈였는데 새로운 주가 연방에

포함이 되면 노예제도를 시행할지에 대한 의견 충돌이 정치권을 갈라 

놓았다. 특히 존 브라운 같은 완강한 노예 폐지 주의자들은 1859년 10월 

연방 무기고에 무장 침입을 하면서 남부인들은 노예제도가 공격받고 있다고 

느꼈고 이를 목숨으로 지키고 싶어 했다.

네 번째, 1860년 링컨의 당선이었다.

새로 만들어진 공화당은 노예제도가 새로운 영토로 팽창하는 것에 반대하였고

공화당의 후보로 뽑힌 링컨은 라이벌이었던 민주당이 남과 북부로 나누어진

덕에 쉽게 당선이 된다. 하지만 북부와 남부는 공화당과 남부 민주당으로 확연하게

갈렸고 남부 주들은 링컨이 당선되자 노예제도와 주정부의 권리가 위협을 받을

거라는 믿음 아래 사우스캐롤라이나부터 남부 주들이 연방에서 하나 둘 탈퇴하기

시작한다. 선거 한달 후 1860년 12월 20일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미시시피, 플로리다, 엘라베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까지

총 7개의 주가 줄줄이 연방에서 탈퇴한다.

1861년 2월, 이 7개의 주가 모여서 제퍼슨 데이비스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세우고

아메리카 연맹을 만든다. 아직 링컨의 임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3월 링컨의 임기가 시작되고 취임연설에서 링컨은 주의 탈퇴는 헌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강조했으며 필요한 경우 연방은 무력으로 보존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강조한다.

한편 미국에서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간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연방 요새였던 섬터요새에

식량이 떨어지고 있었다. 링컨은 보급 요청에 섬터 요새에 보급선을 보내는데

이에 맞서 남군이 4월 12일 섬터 요새에 포격을 먼저 개시한다. 

링컨이 위임한 지 6주가 채 안돼서 남북전쟁의 첫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남군의 공격에 의한 직접적인 사상자는 없었지만 연방의 요새가 공격받은 것에 대해

링컨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링컨은 바로 민병대를 요구하면서 반란을 진압하려는 다짐을 한다.

이에 맞서 남부연맹도 전쟁에 준비를 하는데 버지니아, 아칸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등

4개의 주가 남부연맹에 들어오면서 총 11개의 남부 주들은 연방에 맞서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 북부와 남부의 국경 지대에 있는 주들이 문제였는데 중간에 있는 주들은 노예제도가

합법이지만 연방에서 아직 떨어져 나오지 않은 주들이었다.

이때 링컨은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는데 메릴랜드와 워싱턴 DC를 일단 군대를 보내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해 분리주의자들을 재판 없이 구금한다. 미주리 주도 분리주의자였던

주지사가 분리하기 위해 민병대를 부르자 연방군이 곧바로 진압을 하고 켄터키주는 중립을

선언하지만 남군이 침입을 하게 되자 북부에 들어오게 된다. 이처럼 국경에 있는 주들이

북부로 가담하게 된 것은 북부에겐 큰 축복이었고 이미 제조업과 인이력 면에서 크게 뒤쳐진

남부에게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켄터키 주에서 태어난 링컨은 무슨 일이 있어서도 켄터키를

가져와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켄터키가 연방에 남은 것에 크게 안도했다.

 

마지막으로 전쟁을 얘기하기 전에 북부와 남부의 전력을 필요가 있다.

첫째, 북부의 인구는 2200만 명, 남부의 인구는 900만 명 중 350만 명은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노예들이었다. 많은 이민자들과 노예들도 북부를 위해 싸우게 되자 수적인 우세가 더 심해진다.

경제적인 차이는 더 극심했다. 산업 역량에서만 8배가 앞섰던 북부는 철도부터 군복, 무기, 

식량까지 월등히 앞섰는데 목화 생산에 집중했던 남부는 북부의 해상 봉쇄와 식량 줄 타격에 

전쟁 말기엔 식량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남부도 중요한 이점들이 있었는데 

일단 수비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북부와는 달리 무승부만 해도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전토가 자국 영토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지형에 더 익숙했고 북부의 침략에 맞서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지킨다는 목적 아래 병사들의 사기가 처음엔 더 높았다.

마지막으로 유능한 지도자였던 로버트 리 장군이 북군의 지휘권을 거절하고 자신의 고향인

버지니아 주를 따라 남군에 가담한다.

리 장군은 전쟁 끝까지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쟁은 얼마나 길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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