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 2023. 1. 23. 09:15

병인양요(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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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프랑스 함대의 침략으로

조선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이

강화도의 정족 산성에서 물리쳤으며,

이때 프랑스군은 외규장각 도서들을

약탈해 갔다가 최근에야

임대 형식으로 반환했다.

조선 고종 때인 1866년 초에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지하며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 신자 

수천 명을 처형했다.

 이를 병인박해라고 한다. 

그런데 이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프랑스 선교사 리델이 중국으로 도망쳐

 이 소식을 프랑스군에게 알렸다. 

이에 프랑스군 함대 사령관인 로즈가

 7척의 함선과 1,00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와 강화도를 침략했다.

프랑스군은 강화도를 점령한 뒤, 

프랑스인 선교사를 죽인 책임자를 

엄벌하고 통상 조약을 체결하라며 

조선 정부를 위협했다.

 하지만 조선 정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부대를 편성하여 프랑스군과

 맞서 싸우기로 했다.

 당시 프랑스군은 화력이 좋은

 신식 무기로 무장했기 때문에 

조선군보다 전력이 훨씬 강했다.

 조선군을 이끌게 된 양헌수는

 몰래 강화도로 건너가

 삼랑성(정족 산성)에 진을 치고 

공격해 오는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정족 산성 전투에서 패한 

프랑스군은 더 이상 강화도를

 점거할 의지를 잃어버리고 철수했다.

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물러나면서 

당시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하고

 있던 책 340권과 은 19상자 등을 훔쳐갔다.

 그리고 나머지 서적들은 불에 타 버렸다. 

프랑스군이 가지고 간 외규장각 도서는

 주로 왕실의 행사를 기록한 《의궤》였다.

 이후 우리나라는 병인양요 때 가져간

 도서들을 반환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프랑스는 외규장각 도서를 

임대 형식으로 반환하기로 합의했고, 

2011년 4차례에 걸쳐 296권의 책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병인양요를 계기로 조선 정부는

나라의 문을 닫아 거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과

천주교 금지 정책을 강화하게 되었다.

서양의 오랑캐가 일으킨 전쟁을 뜻하는

‘양요’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 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커진 것이다.

게다가 5년 뒤에는 미국까지 군함을

이끌고 와 신미양요를 일으키자

조선은 더욱 강력하게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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