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왕후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왕비
아들 명종이 태어난 후에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씀
명종 즉위 초기에는
문정 왕후가 8년간 수렴청정
열렬한 불교 신자로서 조선 전기
대규모의 왕실발원불화를 발원했으며,
그로 인해 제작된 불화는
현재 남아있는 조선 전기 불화의
대부분을 차지
문정 왕후는 제11대 임금 중종의 세 번째 부인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은 연산군과
관련이 있는 가문이라
왕비 자리에서 쫓겨남
이후 두 번째 부인으로 장경 왕후가 들어옴
문정 왕후는 중종의 두 번째 부인인
장경 왕후가 죽자, 중종과 혼인을 맺게 됨
중종은 장경 왕후가 낳은
아들인 인종을 보호하기 위해
문정 왕후를 새로운 왕비로 맞아들임
문정 왕후는 중종과 혼인해
30살에 이르러 명종을 낳게 되됨
자신이 아들을 낳자 문정 왕후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던 것
이때부터 문정 왕후는
중종의 둘째 부인이 낳은
아들 인종을 미워하기 시작
인종은 중종이 죽은 뒤 왕위를 물려받음
하지만 인종의 왕의 자리에 오른 지
9개월 만에 그만 죽음을 맞이함
13대 임금 명종은 문정 왕후의 아들이자,
인종의 이복동생
그는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됨
그래서 왕의 어머니인 문정 왕후는
명종을 도와 정치를 돌봄
문정 왕후는 명종 대신
정치를 하면서 불교 진흥 정책을 펼침
승려 보우를 등용해 봉은사의 주지로
임명하고 적극적으로
불교를 키움
이것은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많은 유학자들의 반발을 삼
을사사화는 인종을 지지하는
대윤파와, 명종을 지지하는 소윤파들의 다툼
결과는 명종을 지지하는 소윤파의 승리
문정 왕후는 을사사화 이후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림과
대윤파를 내쫓음
문정 왕후가 을사사화로
힘을 잡자, 소윤파는 많은 비리를 일으킴
특히 문정 왕후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소윤파 윤원형과 정난정은 제멋대로 굴며,
남의 재산을 빼앗는 등 횡포를 부렸고, 갖은 부정을 일으킴
이 때문에 사회는 점점 혼란스러워짐
문정왕후는 숭불 경향을 바탕으로 한
불교정책을 지원하고 내원당을 확대하여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불교 교단의
위상을 강화했고, 사찰에서 활발한 불사를
이룰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줌
그 과정에서 내원당을 비롯한 수많은
사찰의 법당에 봉안할 불화의 수요가 증가하고
왕실불화가 민간으로 확대되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음
이처럼 정왕후는 조선조 명종대의
불화의 수요와 화풍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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