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 2023. 1. 19. 09:39

대한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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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의 조선의 국명.

1897년에 고종이 국가의 자주독립을 지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나라 이름을 고쳤다.

 ‘황제가 다스리는 한민족의 국가’라는 뜻에서

 대한 제국이라고 불렀으며, 

1910년 일본에게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대한 제국은 사실상 조선과 같은 나라
나라 이름을 바꾸기는 했지만

 지배층은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임금이 다스리는 

군주주의 국가였다. 


대한 제국의 황제도 조선의 제26대

 임금인 고종이었다. 

참정권을 비롯한 근대 민주 사회의

 기본적인 권리들은 여전히

 대중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조선의 왕비까지 살해한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아관 파천) 고종은 1년 만에 

경운궁(덕수궁)으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으로, 

연호를 ‘광무’로 바꾼 뒤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졌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의식을 통해

 우리나라가 자주독립국이며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임을 

널리 알린 것이다.

이후 대한 제국은 옛것을 근본으로 

삼아 새 것을 받아들이는 개혁을 추진했다. 

전국의 토지를 조사하여 소유권을 명확히 하고,

 전기와 전신 사업은 물론 전차와 철도를 놓았으며,

 실업 학교와 의학교, 외국어 학교를 세웠다.

 또한 군사 제도를 개혁해 외국의 침략에

 맞설 수 있도록 군사의 수를 늘리고 

황제가 군대를 이끌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한 제국은 자유 민권 운동과

 의회 설립을 주장한 독립 협회를

 해산시키는 등 당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던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 열강들의 침략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했다.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을 승리한 후 

을사조약(1905년 11월 17일)을 

맺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미국과 영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과 

영일동맹을 통해 역시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해주었다.

이에 고종은 일본의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게

되지만 이미 눈치를 챈 일본이 손을 써서

특사들이 회의장에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이 사건에 분노한 일본은

이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옹립했다.

1907년 7월 19일. 

순종이 새 황제로 즉위하자 

일본은 정미7조약, 기유각서 등의 

조약으로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 경찰권 등의 국가 권력을

 하나 둘 빼앗아 대한제국은

 허울 뿐인 제국이 되었다. 


결국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 황실은 이왕가라는 이름의

 일본 귀족으로 편입되고, 

연호 또한 융희 4년에서 메이지 43년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공식적으로 멸망하여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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