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된 문화.
알렉산드로스가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정복한 도시에 그리스 인을 이주시켜 그리스 문화를 전파했다.
인더스 강에 도달한 알렉산드로스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병사들이 오랜 싸움으로 지쳐 있었고,
장마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는 하는 수 없이 원정군을 둘로 나누어 육로와 해로를 통해 돌아가게 했다.
페르시아의 수도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가장 먼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페르시아의 공주이자 다리우스 3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할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옷을 입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마케도니아 귀족 90여 명에게 명하여, 그들 역시 페르시아 귀족 출신의 여인들과 결혼하게 했다.
또, 페르시아 청년 3만 명을 뽑아 그리스 어를 가르치고 전술 훈련을 시켜 자신의 친위대로 만들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수많은 귀족과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을 펼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정복한 나라의 전통을 유지하는 게 그들을 통치하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의 문화와 그리스 문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려는 생각에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정복한 지역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세우고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로 삼았다.
이런 알렉산드로스의 노력으로 헬레니즘(Hellenism)1)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다.
헬레니즘은 알렉산드로스가 동방 지역을 원정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의 문화와 오리엔트의 고유문화가 융합되며 생겨난 것이었다.
“이제 국가나 민족은 중요하지 않아. 그것보다는 개인이 어떻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지!”
이런 생각이 바로 헬레니즘 문화의 핵심이었다.
그리하여 에피쿠로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현실 세계에서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개인을 더 중요시하는 사상은 미술과 같은 예술 영역에서도 드러났다.
그리스 시대의 미술 작품은 조화와 균형을 중요시 했는데 그에 비해서 헬레니즘 시대의 미술은 인간의 육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작품이 많았다.
《밀로의 비너스》나 《라오콘 상》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헬레니즘 미술은 멀리 인도까지 전해져 간다라 불교 미술을 낳았고, 훗날에는 중국과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가 하면, 실용적인 자연 과학도 발달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알아내고 발가벗고 뛰쳐나왔던 것도 이때 일어난 일이다.
또한 최초로 여러 사람 앞에서 인체를 해부했던 해부학의 아버지 헤로필로스도 이 무렵에 활약하던 의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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