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페르시아 전쟁
BC 492년부터 BC 479년까지 지속된 페르시아 제국의 그리스 원정 전쟁으로,
그리스의여러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연합 대응하여 성공적으로 공격을 막아내었다.
고대 그리스는 오래 전부터 크고 작은 도시 국가인 폴리스로 이루어져 있었다.
폴리스는 보통 때엔 독립적으로 생활하다가 전쟁이 나면 서로 힘을 합쳐 적군에 맞섰다.
이런 도시 국가들의 연합인 그리스에게 가장 큰 적은 페르시아였다.
페르시아는 서아시아부터 그리스 일부 지역까지 장악하고 대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기원전 499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이오니아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스의 폴리스 중 하나였던 아테네는 군대를 보내 반란군을 도왔지요.
페르시아에 에게 해의 해상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테네는 에게 해를 무대로 해상 무역을 하던 국가였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군대를 보내 반란을 진압하고,
이오니아 사람들을 도운 아테네에 보복을 하려고 그리스 원정에 나섰다.
기원전 492년, 페르시아 군대는 그리스 북부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를 점령하고 아테네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함대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다리우스 1세의 1차 원정은 실패로 끝났다.
다리우스 1세는 군대를 정비하고 기원전 490년에 다시 그리스를 공격했어요.
아테네는 이웃 폴리스 스파르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스파르타가 종교 축제 기간이었기 때문에 지원군을 보내는 일이 계속 늦어졌다.
어쩔 수 없이 아테네는 밀티아데스 장군을 보내 페르시아군과 맞서게 했다.
전쟁터는 마라톤 평원이었다.
아테네군은 페르시아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썼어요.
페르시아군을 아테네군 대열의 중앙으로 꾀어내 포위해 버린 것이다.
함정에 빠진 페르시아군은 전투에서 졌고, 이번에는 배를 타고 아테네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아테네가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감을 잃어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리우스 1세는 다시 전쟁 준비를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기원전 480년, 3차 그리스 원정에 나섰다.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동맹군을 형성하여 맞섰다.
스파르타는 페르시아 대군에게 전멸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테네는 페르시아 해군을 살라미스 해협으로 유인해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살라미스 해협은 폭이 좁아서 상대적으로 전함이 작고 가벼운 그리스에 유리했다.
페르시아는 다음 해에도 그리스에 쳐들어왔지만 그리스 동맹군에게 패하고 돌아갔다.
그 뒤로 페르시아는 그리스 정복을 포기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 아테네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중요한 나랏일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에 참여해 함께 싸운 공로가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권리는 남자 시민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아테네는 강한 해군력으로 에게 해의 무역을 장악하고 상업적으로도 번창했다.
또 주변 폴리스들과 동맹을 맺고 지휘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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