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 2023. 1. 7. 09:32

백제 무령왕(501 ~ 523,재위 50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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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제25대 왕으로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뒤 혼란에 빠져

있던 백제를 안정시켰다. 


성은 부여, 이름은 사마 혹은 융, 시호는 무령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무령왕은 “신장이 8척이고,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인자하고 

너그러워서 민심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그는 501년(동성왕 23)에 동성왕이 

사냥에 나갔다가 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에게 칼에 찔려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위에 오른 무령왕은 병사들을 이끌고

우두성으로 가서 한솔 해명으로

하여금 백가의 근거지인 가림성을

공격케 하여 백가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뒤 매우 큰 혼란에 빠져 있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백성들의 삶도 

피폐해져 있었다. 무령왕은 고구려의 

남하에 맞서 국방 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려 노력하였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달솔 우영을 시켜

5천의 병사를 이끌고 고구려 수곡성을

공격케 했으며, 이듬해에도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변경을 침공하였다.

503년(무령왕 3)에는 말갈이 고목성을

공격해오자 5천의 병사를 보내

이를 물리쳤다. 말갈이 506년(무령왕 6)에도

고목성을 다시 공격해오자 무령왕은

이듬해 고목성 남쪽에 장령성을 쌓아

말갈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그리고 이 해에 고구려 장수인 고로가

말갈과 함께 한성을 치기 위해

남하하자 군사를 보내 이를 물리쳤다.

512년(무령왕 12)에는 고구려가

가불성과 원산성을 공격해오자

무령왕은 직접 기병 3천을

거느리고 나가서 이를 물리쳤다.

그리고 그의 재위 기간에는 

흉년이 자주 들었는데,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만으로도 502년(무령왕 2), 

506년(무령왕 6), 521년(무령왕 21)에 

홍수와 가뭄, 전염병, 메뚜기 떼의 

창궐 등으로 백성들이 크게 굶주렸다고 

나타나 있다. 무령왕은 창고를 열어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한편,

 510년(무령왕 10)에는 왕명으로 

하천의 제방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도회지로 몰려든 유민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사를 짓게 하였다.

무령왕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왜 등과의 외교 관계도 강화하였다.

그래서 512년에 양나라로

사신을 보냈으며, 521년(무령왕 21)에도

양나라에 사신을 보냈다. 이때 양나라

무제는 무령왕을 ‘사지절도독백제

제군사영동대장군’로 봉하였다.

그리고 523년(무령왕 23)에는

 직접 한성으로 가서 좌평 인우와

달솔 사오를 시켜 한수 이북의 백성을

동원해 쌍현성을 쌓게 하였다.

하지만 한성에서 웅진으로 돌아온 뒤에

그해 5월에 6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무령왕이 죽은 뒤에 그의 아들인

명농이 왕위를

계승하였다(백제 26대 성왕).

한편, 무령왕은 백제의 왕들

 가운데 출생과 사망 연대가 처음으로

 정확히 확인되는 왕이기도 하다. 

공주 송산지 고분군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의 지석에는 무령왕을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이라고

나타내고 있으며, 그가 62세 때인 계묘년

오월병술삭칠일에 죽었고,

2년 뒤인 을사년(525년)

팔월계유삭십이일에 대묘에

안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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