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자이자 문화재 수집가,
문화재 보존가, 저술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유출되는
서화, 도자기, 불상, 석조물,
서적 등을 수집해서 이 땅에 남긴 인물
1906년 서울 종로 출생
그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종로 일대에서 장사를 해
서울에서도 이름난 부자
전형필은 휘문고보를 졸업한 이후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가 법학을 공부
법을 공부해 일제에 억울함을 당하며
살아가는 우리 민족을 도와주라는 아버지 말씀
하지만 그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게 되면서
그는 변호사의 길을 포기
집안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아
엄청난 부자된 그의 운명을 바꿀 한 사람을
만남
독립 운동가이자 서예가로 이름을 날리던
오세창은 전형필에게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줌
대학 재학 시절 전형필은 방학이 되면
휘문고보 시절 미술 선생님을 찾아가곤
했는데 미술 선생님은 그에게
오세창을 소개해 줌
오세창은 문화유산을 보는 눈이 남다름
옛날 책과 도자기들이 단순한 골동품들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긴
보물임을 알고 있었음
전형필은 오세창을 통해 문화유산에
눈을 뜨면서 그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함
그러면서 변호사의 길 대신 전 재산을
들여서라도 문화유산을 지켜내기로 함
일제가 우리 문화유산을 빼앗고 파괴하는
상황 속에서 여느 독립 운동가처럼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힘을 쏟음
전형필에게 간송이라는 호를 지어준
사람도 바로 오세창
간송은 산골물 ‘간’자와 소나무 ‘송’자로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흐르는 물과
그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란 뜻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내 나라를 지키겠다고
마음먹은 전형필은 가장 먼저 인사동에
있는 책방인 한남서림을 넘겨받음
그곳에서 옛날 책과 그림, 도자기 등
골동품들을 사들임
전형필은 옛 책과 그림, 도자기 등을 팔러오는
사람들에게 후하게 값을 쳐주며 사들임
거래꾼들이 귀한 우리 문화유산을 많이 가지고 오게 함
그러던 어느 날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이
일본인 마에다 사이치로로 부터
비싼 가격임에도 머뭇거림 없이 땅을
팔아 그 매병을 사들임
1936년 11월 서울의 경성구락부에서
조선 백자(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를 놓고
경매가 벌어지는가운데 순식간에
1만 4천 원이 넘는 가격이 됨
점점 높아지는 가격에도 계속 흥정을
벌이는 두 사람, 전형필과 일본인 야마나까
결국 조선의 청화백자는 전형필의 품에 안김
1936년에는 조선 시대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가
일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높은 가격을 주고 되찾아옴
1937년에는 일본에 있던 영국인 변호사
개스비로부터 고려청자 20점을
기와집 400여 채 가격인 40만 원에 사들임
1943년 7월 어느 날,
“경북 안동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타났다고 소문을 들음
전형필은 이 소식이 조선 총독부에 알려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훈민정음 해례본』을
먼저 손에 넣으려고 함
『훈민정음 해례본』을 손에 넣은 전형필은
일제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것이 세상에
전해진다는 사실 자체를 비밀로 하고, 꼭꼭 숨겨
두었다가 광복 이후에야 세상에 내놓음
6‧25 전쟁이 나자 어쩔 수 없이 문화유산들을
그대로 두고 피난을 가야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만은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챙겨감
피란길에도 잃어버릴까봐 가슴에 품고
다녔고, 잠을 잘 때는 베개 속에 넣고 잤다고 함
전형필이 일제의 감시와 전쟁으로부터
훈민정음을 지켜낸 덕분에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우리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지도
정확히 알 수 있었음
때론 열 배가 넘은 가격에 문화유산을 사들이고,
사들인 문화유산을 수선하는데 산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쓰기도 함
1938년 전형필은 자신이 모은, 빛나는
보물들을 모아둘 보물 창고를 지음
바로 보화각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
신윤복의 풍속도 화첩 등 국보 12점,
보물 10점 등 수천 여 점의 문화유산이 보관되어 있음
그가 죽은 뒤 보화각은 이름이 간송미술관으로 바뀜
간송미술관은 전형필의 뜻에 따라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널리 보여주기
위해 1년에 두 번 전시회를 열고있음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현 세자(1612년 ~ 1645년) (0) | 2022.12.08 |
---|---|
공병우(1907 ~ 1995) (0) | 2022.12.06 |
이이(1536 ~ 1584) (1) | 2022.12.03 |
안창호(1878.11.9 ~ 1938.3.10.) (0) | 2022.12.02 |
이황1502년(연산군 6년) 1월 3일~1571년(선조 3년) 1월 3일 (0) | 2022.11.29 |